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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알쓸신골

내 나이가 어때서~~

산풍경 2025. 6. 23. 23:51

제목이 좀 그러긴 하는데~~.
오늘의 골프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화창한 제주도다.

제주도 회원제 골프장 캐슬렉스.
들어가는 입구부터 좀 남다르다.

빨간 여우가 상징처럼 서있다.
눈에 확 들어오긴 한다.
클럽하우스로 들어가는 길은 아름드리 나무들이 차렷자세로 도열한 군기 바짝 든 의장대 같다.

클럽하우스는 웅장하고 세월의 흔적이 엿보인다.

사조참치로 유명한 회사의 소유인가 보다.
클럽하우스 안에 프론트는 좀 야멸차다.


명색이 회원제 골프장인데 저쪽 키오스크에서 체크인하고 라커 번호표 받아 지하로 내려가면 된다고 똑 부러지게 안내한다.


인간미라는 게 없어 보인다.
라커룸 역시 오래된 듯하다.
선크림을 덕지덕지 바르고 스타트존으로 향한다.

상징물인가 보다.
동, 남 18홀로 구성되어 있다.
스타트 존에서 바라본 클럽하우스는 멋지다. 고풍스럽기도하고.

드디어 같이 라운딩 하실 분들을 만났다.
좀 연세가 있어 보이시는 큰 형님들.
세분 다 캐슬렉스 초창기부터 회원님들이다.

캐디백이 낡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골프채는 골프치고 골프장에 놔두고 몸만 왔다갔다 한단다.
그러니 남보여주기식 새 캐디백이 필요없는 것이다.

캐디백에서 느껴지는 연륜만큼이나 구력이 상당하신 분들이다.
골프 치는데 한계 나이가 있나?
나는 75세까지만 치려고 마음속에 다짐을 했었다. 그런데 머리에 망치를 얻어맞은 듯 ~
나의 고정관념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상황이었다.
이분들의 나이가 궁금해진다.
그런데 첫 티샷을 하고 어찌어찌하여 홀 아웃을 하자마자 천 원짜리를 주고받으신다.
으잉?
타당 천 원짜리 내기골프라고?
내 옆에 앉으신 제주 토박이 형님이 씩~~ 웃으신다.

"왜? 같이 하멘~~?"

"아니요~~ 저는 괜찮아요."
"세분이서 하셔요."

전혀 봐주는 게 없다.
오비, 해저드, 그대로 인정
NO 멀리건, OK는 먹갈치.
카트도로에 떨어진 공은 한클럽 이내에서 잔디에 놓고 친다.
거의 PGA다.

너무 궁금해서 캐디에게 물어봤다.
"저분들은 일 년에 100번쯤 오시나?"
캐디가 씨익~~ 웃는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일 년에 300번쯤 오세요.
여기 캐디들은 다 아세요."
아 너무 궁금하다
"그럼 연세들은 어떻게 되시나?"
"ㅎㅎ 직접 물어보세요."

앞자리에 앉아서 딸이 전주 산다고 그래도 좀 말씀이 편해지신 분께 넌지시 물어본다.
그랬더니 본인 포함해서 두 분은 80대시고 한분은 곧 80이 되실 분이란다.
카트에 안타고 18홀 내내 걸어다니시는 분을 가르킨다.
"저 제주도 토박이 친구는 팔팔하잖아?
젊어서 계속 필드를 걸어 다니는 거 봐봐."
헉~~오메나~~
난 매 홀 계속 카트 타고 이동했는데~~
엄청 쪽팔리는 순간이다.
이건 뭔가 잘못된 듯?

티샷 준비하시는 분이 전반 내내 다 땄다

느릿느릿 필드위를 걷고있는 세 분 형님들.
세분 모두 티샷이 대략 140~150 정도이니
파 4에서 결코 two on이 되지 않는다.
전반 내내 세분이서 파 한 개 하신 분은 단 한분.

그런데 7홀 내내 돈 잃고 있다가 파3에서 니어에 버디까지 하셔서 한방에 잃은 돈 모두 회수하신 어르신은 벙글 벙글이시다.
제일 연장자같으시다.
연세를 여쭙기도 미안하다.
이분은 후반 내내 카트에 타면 눈을 감고 잠깐잠깐 조셨다.
체력 안배 차원인 듯하다.
하긴 아무리 풍광이 좋아도, 이곳 캐슬렉스의 모든 곳을 속속들이 알텐데 경치좋은 곳에만 가면 사진을 찍는 내가 가소로웠을 것 같다.
이 아름다운 골프장이 이 세 분들에게는 거의 매일 오는 산책코스처럼 느껴질 듯 하다.

요 홀에서 지금 티샷하시는 저분이 니어 버디 함.

캐슬렉스 골프장은 조경이 단정하다.
전 홀이 산뜻하고 세련된 차도남 같다.
짧은 거리의 파 4, 긴 거리 파 4,
파 5, 파 3도 거리가 아주 지루해질 수 없게 다양하다. 페어웨이도 그리 좁지않은 평지형 골프장이다.
가장 맘에 드는 것은 안개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모든 홀의 구성이 한 눈에 들어오니 속이 시원하다.
물론 홀의 전경이 다 눈에 보인다고해서 매홀 파에 버디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눈이 즐거우니 덩달아 기분도 좋다.

그린이 묘하게 언듈레이션이 있다.
그래서 퍼트를 대충 하면 안 된다.
눈 깜짝하면 3퍼트가 기본이다.
지금은 그린이 좀 느린 편이어서 이 정도란다.

깔끔하게 정리된 스포츠 머리 스타일의 반듯한 숲길.
제주의 토속 문화를 그대로 살린 듯 해서 찰칵.

원래는 같이 골프 치던 골프클럽 회원님들이 10명이었단다.
그런데 몇 명은 세상을 떴고,
일부는 몸이 안 좋아서 골프를 접었단다.
이제 네 명 정도 치는데 한 명이 요즘 병세가 좀 안 좋아서 골프는 쳐야겠고 그러니 궁여지책으로 이렇게 한 명을 조인해서 친다고 하신다.

80세가 지난 나이에 집에 앉아있는 것보다 이렇게 나와서 채를 휘두르면 시간도 잘 가고 몸을 움직이니까 건강한 것 같기도 하다면서 웃으신다.
이 세분의 특징은 절대로 시니어티로 가지 않는다. 무조건 화이트티이다.
이 어르신들의 속 마음은 이런 거다.
내 나이가 어때서?
난 아직 시니어티로 갈 사람이 아니여~~

이제 서서히 지치시는 듯하다.
그치만 이 분들의 천 원짜리 내기골프가 결코 노름 같지 않다.
왜?
내일도 와서 치실 거고,
이번 주에만 5번 치신다는데
오늘은 이분이 따면 내일은 다른 분이 따고
너무 많이 잃으시면 - 만원 정도 -
그분에게는 더 이상 돈을 안 받는다.
서로 그깟 돈 몇푼때문에 의 상하지 않기위한 생활의 지혜인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홀 이벤트를 하신다
5천 원씩 묻어놓고 18번 홀에 제일 잘 치신 분이 가져가는 이벤트.
꺼져가던 장작에 마지막 불꽃을 지피는 이벤트.
마지막에 웃는 자가 진정한 승자.

그리고 마지막까지 제일 집중력이 강한 분이 이겼다.
두 명은 3 온.
거리는 원퍼트로 끝내기엔 좀 애매한 거리.
근데 우승자는 그린에 볼을 올리지 못하고 그린엣지 근처에서 퍼터로 강하게 쳤는데 그게 그대로 홀컵으로 빨려 들어가서 PAR.
엄청 좋아하신다.
그린에 3온하신 두 분은 한번에 홀에 볼을 넣으면 승자가 될 수 있는 상황.
그런데 역시나 두분 다 투퍼트.
예상대로 보기.

나는 골프가 사치스러운 운동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니 이건 운동도 안된다고 여겼었다.
근데 오늘의 골프는 내 관념을 바꿨다.
이 골프가 노년에는 운동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같이 골프를 치기 위해 서로서로를 묘하게 챙긴다.
"어이 아프지 마. 아프면 안 돼. 알았지?"
"아이고 사돈 남 말하네. 하체 운동 좀 하세요.
요즘 자네 거리가 많이 줄었어!"

오직 타수를 줄이는 게 목표인 나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앞으로 골프는 나의 건강을 챙기는 수단으로써 골프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함께하신 동반자 형님들처럼 결코 서두르지 않는 골프였음 한다.

내내 말씀이 없으셨던
카트에 타면 조셨던 형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어이 이사장~~ 언제 육지에 가시나? 혹시 육지들어가기 전에 시간되서 캐슬렉스 한 명 조인이 올라오면 또 신청해서 같이 치세. 잉~~~"

이 말이 고마웠다.
비록 그게 빈 말이라 할지라도.

형님들~~
다음에 다시 같이 치시면
제가 그늘집에서 막걸리 한잔 대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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